[북 여성에 노동이란] 커리어보단 생존 도구(2022. 3. 6/ RFA 여성의 날 특집)

관리자
202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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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여성에 노동이란] 커리어보단 생존 도구


평양의 한 직물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 Mihaela Noroc


앵커: 한 나라 국민의 삶 속에는 그 사회가 가진 특성이 직간접적으로 투영됩니다. 루마니아 출신의 여류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 속에 나타난 북한 여성들의 표정과 행동도 예외는 아닙니다. 비록 공산주의 독재국가 체제 아래 고단한 삶을 살고 있지만, 평범한 여성으로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감추지 않는 솔직함이 사진 속에 담겨 있습니다.  여성의 날 특집, [RFA 스페셜] 에서는 전 세계 100개 이상의 나라를 여행하며 주로 여성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온 미하엘라 노록 씨가 촬영한 사진에 비친 북한 여성들의 삶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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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미소와 함께 적극적으로 사진 촬영에 응해준 북한 여성. / Mihaela Noroc


사진 촬영을 좋아하는 평범한 북한 여성들

[미하엘라 노록] 북한 여성들은 외국인이 먼저 말을 거는 것을 좋아하고 반가워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길거리에서 북한 여성을 만나 그들을 멈춰 세웠을 때는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흥미로워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사진 촬영을 좋아했고요. 전 세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 100여 국가를 여행하며 각국 여성들의 모습을 주로 카메라에 담아 온 루마니아의 여류 사진작가 미하엘라 노록(Mihaela Noroc) 씨. 그녀가 (2월 22일) RFA에 털어놓은 북한 여성들의 첫인상은 평범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입니다.

2013년부터 전 세계 여성들의 다양성과 고유의 아름다움을 작품으로 남기고 있는 노록 씨는 2015년에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본인이 옛 소련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적 소련이 붕괴한 이후 루마니아로 이주하면서 공산주의 국가를 경험했기 때문에 같은 정치∙경제∙사회 체제를 가진 북한 여성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여행에 앞서 과연 북한 여성들이 사진 촬영에 응해줄까란 걱정이 앞섰고, 단 한 명만 촬영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려와 달리 평양과 원산, 신의주 등에서 다양한 연령과 직업에 종사하는 북한 여성 25명을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사전에 이 사진이 전 세계에 공개될 수 있다고 설명했음에도 북한 여성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고, 매우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해줬다는 게 노록 씨의 설명입니다.

[미하엘라 노록] 양산을 쓴 북한 여성은 사진 촬영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제가 아프가니스탄의 작은 마을을 방문했을 때도 그곳 여성들이 외국인을 만난 것을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북한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평범하다는 것이고, 개방적이며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는 하나의 증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국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평양에 체류했던 린지 밀러 씨도 RFA에 외국인인 자신에게 답답한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북한 여성들의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린지 밀러] 길거리에서 북한 주민들과 좋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가족들이 와서 저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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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지하철역에서 북한 여성을 촬영하는 루마니아 사진작가 미하엘라 노록 씨. / Mihaela Noroc


노록 씨가 촬영한 25명 북한 여성들의 사진을 보면 표정이 제각각입니다.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는 여성이 있는 반면, 긴장한 탓인지 경직된 모습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노록 씨는 공산주의 국가 특유의 사회적 분위기를 언급했습니다.

[미하엘라 노록] 각 여성의 개인적인 성격에 따른 반응의 차이일 수 있겠지만, 카메라를 보고 웃지 않는 여성들은 북한 특유의 경직한 사회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 독재국가에서 산다는 것이 개인의 성격까지 바꿀 수 있으니까요. 외면과 내면이 다른 이중적인 삶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가 살았던 공산국가 루마니아에서도 ‘이웃이 들으니까 크게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옆집에서 뭘 듣는지, 뭘 먹는지조차 알 수 있다는 건데요. 독재국가에서는 늘 일어나는 일이죠. 당연히 북한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밀러 씨도 이방인을 선뜻 반기지 않는 듯한 북한 사회의 분위기를 전한 바 있습니다. 북한 여성들이 밀러 씨와 대화할 때마다 감시당하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 때문인지 불편함을 느끼는 듯 했다는 겁니다.

[린지 밀러] 그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항상 그들이 자유롭게 대화하지 못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그래서 관계가 굉장히 복잡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북한에 대해 좋아하는 점은 주민들이 매우 다정하고 인심이 좋고, 친절하다는 점입니다. 정치적인 부분에 가려져 이 이면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생활이 많이 간과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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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시 식당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북한 여성. / Mihaela Noroc


젊은 나이부터 여러 경제활동에 적극적인 북한 여성들

미하엘라 노록 씨는 북한에서 다양한 직업군의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호텔 식당 종업원, 노래하는 가수, 열차 안내원, 학생, 공장 근로자 등 여러 분야에서 북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려 보이는 여성들이 공장에 정말 많았습니다. 물론 나이 든 여성들도 있었고요.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대부분이 여성이었습니다. 또 식당마다 여성 가수와 댄서들이 있었는데, 가수로 일하는 여성은 정말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공산 국가의 여성들이 그렇듯이 그 일을 자신이 원하고 선택했다기보다 국가에서 정해준 대로, 또는 기본적인 생계를 위해서인 것처럼 보였다는 게 노록 씨의 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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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시 호텔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 Mihaela Noroc


그래서인지 북한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업도 식당 종업원이나 해외 노동자 등 돈을 많이 버는 업종입니다. 외화를 다루거나 봉사료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직업도 선망의 대상입니다.

김정숙교원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던 탈북민 정유나 씨는 (2월 24일) RFA에 오늘날 북한 여성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가장 큰 목적도 돈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유나] 옛날에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업은 거의 다 공무원이었고, 어쩔 수 없이 일반 직장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장마당에 나가서 장사꾼이 돼 돈을 벌 수 있는 쪽으로 직업 선호도가 바뀌었습니다. 평양에서는 해외에 외국인 노동자로 나가는 걸 가장 선호하고요. 평양의 고급 식당에서 일하는 것도 선호합니다. 그리고 요즘 새롭게 뜨는 것은 주유소에서 일하는 거라고 합니다. 달러로 팁(봉사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지방 여성들도 장사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호합니다.

린지 밀러 씨에 따르면 오늘날 북한 여성들은 국가에서 정해준 대로 직장에 배치되기보다 자신만의 직업을 가진 전문직 여성을 동경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에서 생소한 ‘프리랜서’에 여성들이 큰 관심을 보인 것처럼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특히 외국인들을 많이 만나봤거나 외부 정보를 접해본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직업관 변화와 성공 욕구 등이 더 생겨나고 있다는 게 노록 씨의 설명입니다.

[미하엘라 노록] 제가 많은 북한 여성들 대화해 보지 못했지만, 저를 안내해준 두 명의 안내원 여성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들은 직업 정신이 투철했고, 안내원으로서도 성공하길 원했습니다. 또 그들과 인터넷, 전화기, 영화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고, 그들의 지식도 풍부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들이 외국인과 교류를 많이 했기 때문에 다른 일반 여성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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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 Mihaela Noroc


북한은 지난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부녀절)을 맞아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 진출을 독려했습니다. 당시 노동신문은 사설을 통해 “여성들에 대한 당의 믿음과 기대는 매우 크다”며 “여성들이 사회에 적극 진출해 부강조국 건설에 헌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의사와 건축가, 과학자 등 여성 전문가들을 소개하면서 각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을 부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탈북 여성들은 북한 당국의 주장과 상반된 현실을 꼬집습니다. 한국 정착 3년 차인 20대 탈북 여성 박시연 씨(북한 가족의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는 (2월 24일) RFA에 북한은 여성이 직업을 선택할 수도, 이를 통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고, 자신이 북한을 떠난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시연(가명)] 직업관을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사실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고요. 여성들이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이 매우 작습니다. 일단 일자리가 없고요. 아무리 공부를 하고 대학을 나와도, 그 방향으로 취직하는 사람이 정말 10명 중 한 명 정도인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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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대학생. / Mihaela Noroc


어쩌면 노록 씨가 촬영한 사진 속 북한 여성들도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은 따로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국가에서 지정해주는 곳에서만 일해야 하거나, 생계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북한 여성들도 적지 않습니다.
북한 체제와 제도적 한계에 가로막혀 사진 틀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매일을 살아가는 북한 여성들. 카메라를 응시하는 이들의 얼굴에 투영된 북한 사회의 어두운 단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