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칼럼

유럽연합의 대북인권정책: 특징과 함의 (이규영칼럼)

관리자
202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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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의 대북인권정책: 특징과 함의

 

이 규 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북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인권후진국의 하나이다. 북한은 의식주와 교육․의료를 해결해 주는 것이 인권보장이라고 주장하며, 인권보장은 집단주의에 의해서 실현된다. 따라서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인권문제가 아니라는 논리를 주장한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지금까지도 의식주와 교육․의료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능력은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개입논거가 된다. 다만 현실적 차원에서 인권의 보편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특정 국가의 문제에 직접 개입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유럽연합관계는 현실사회주의체제 붕괴 직후인 90년대 이후 본격화되었다. 유럽연합은 1994년 제네바 북미합의를 지원키 위해 1995년 3월에 설립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통한 지원 및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 농업, 의약품 등의 지원을 실시한 바 있다. 유럽연합의 북한인권개선에 대한 노력은 1975년 헬싱키 협정(The Helsinki Act)사례를 원용해 볼 수 있다. 이 협정에는 소련․동유럽권이 서방 진영으로부터 사회주의 블록의 국경선을 공인받는 대가로, 자유주의적 인권개선조항을 받아들이기로 약속하는 조항이 포함되었다. 이 인권개선조항에 입각한 인권정책은 사회주의권의 붕괴에 일조한 측면도 있다. 즉 제1부의 인권에 관한 조항은 서방이 소련과 동유럽국가의 인권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동시에 제3부의 교류협력에 관한 조항은 사람, 문화 등 인도적 차원에서 교류를 시행하면서 폐쇄사회를 개방사회로 변화시키는 동인이 되었다.

 

유럽연합이 그동안 대북한 인권개선과 관련하여 취했던 제반 조치들은 주로 식량 및 인도적 지원으로 요약될 수 있다.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을 구휼하는 문제는 인권논쟁의 차원을 넘어서 ‘본질적 인권사항’에 해당된다. 또한 유럽연합의 인권부문을 포함한 대북한 외교정책은 한반도 나아가 아시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유럽연합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공동외교안보정책을 기반으로 하는 독자적 행동범주를 넓히려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한반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은 실제로 매우 제한되어 있다. 동시에 유럽연합 고위관리들도 대북정책에 있어서 미국과 공조를 거듭 강조함으로써 유럽이 한반도에서 미국을 대신한다는 의혹을 불식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대북한 인권정책 특징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장기적 전략으로 추진된다. 유럽연합은 1998년 북한과 처음 정치대화를 시작하면서 관개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인권문제해결을 요구했다. 북한은 유럽연합의 인권개선 요구를 계속 일축해 오다가 2000년 제3차 정치대화부터 인권에 대한 대화용의를 표명했다. 이는 당시 미국 부시행정부의 대북 강경책과 맞물려서 북한이 유럽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하기 위한 전략으로 유럽의 인권대화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락한 것이다. 다만 인권대화의 가능성만을 표명한 것일 뿐 북한 내부의 인권침해나 탄압을 인정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따라서 유럽연합은 장기적인 대화를 통해 북한 인권개선을 유도해내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추구하는 대북한 인권개선정책은 북한 원조와 관계개선의 전제사항이며, 이는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유럽연합의 대북한 인권정책은 가시적인 진전이 있다고 판단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유럽연합의 대북한 인권정책은 대중국 인권대화 경험이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유럽연합은 이미 중국과 인권대화를 시도했던 경험이 있다. 중국은 유럽연합의 인권개선 요구를 부당한 내정간섭으로 간주해왔다. 그렇지만 수차례 인권대화를 통해 인권개념에 대해 서로간의 시각을 교환하고, 형사 및 사법제도를 상호 비교하는 등 인권분야에 대한 상호 공감대를 확장한 바 있었다. 유럽연합은 이러한 대화가 중국 인권개선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2001년 유럽연합-북한간 인권회담은 당시 외교관계수립과 맞물려 매우 조심스럽게 성사되었다. 무엇보다 유럽연합은 북한에 대해 인권세미나 및 대화를 지속시키는데 주력하였다. 이러한 유럽연합정책은 미국이 대중국 관계에서 무역과 인권문제를 구분했던 사례와 매우 다르다. 즉 미국은 중국의 인권문제를 심각하게 간주하면서도, 실제 중국의 대미수출과정에서 최혜국 대우를 취했었다. 반면 유럽연합은 북한에 대해서 식량 및 인도적 지원으로서 경제적 협력과 아울러 정치대화를 추구하여 민주주의 원리, 인권존중, 지역평화와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정책을 전개한다. 즉 대북 경제협력은 한반도 평화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장기적 정책목표에 대한 보조적 정책목표로 상정된다. 따라서 유럽연합의 대북지원과 경제협력정책은 언제나 정치협상과 병행하여 진행되어 왔다.

 

셋째, 유럽연합으로서 대북한 인권정책은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시킬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유럽연합의 대북한 인권정책은 북한인권 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한국 및 미국의 대북한 대화의제에 빠져있는, 즉 ‘사각지대’에 속하는 사안이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인권문제보다 핵문제가 상대적으로 더 우선적 의제이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인권문제를 심각하게 쟁점화하지 않고 있다. 한국으로서도 북한 인권문제는 대북관계개선보다 우선순위에서 뒤쳐진다. 따라서 한국은 대북관계개선을 위해 북한이 껄끄러워하는 인권문제를 쟁점화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측면에서 유럽연합의 입장에서 북한 인권문제는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적절한 영역중의 하나로 보여진다. 즉 북한인권문제는 한국이나 미국이 거론하기 어려운 민감한 사안인 동시에, 인권을 중시해온 유럽연합의 전통과도 맞아 떨어진다. 따라서 유럽연합이 북한 인권문제에 개입함으로써 인권문제에 관한한 미국, 일본 또는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더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유럽연합의 대북한 인권정책추진으로 한반도에서 남북긴장완화는 한국이, 대량살상무기 해결은 미국이, 인권개선은 유럽연합이 주도하는 양축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유럽연합의 대북 인권정책은 미국정책의 보완내지 종속차원으로 볼 수 없으며, 변수라기보다 오히려 상수(常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한반도에서 유럽연합이 미국에 도전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유럽연합이 어떤 사안을 둘러싸고 미국과 견해를 달리하거나, 입장차이가 존재하는 경우 독자적 행보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나아가 유럽의 독자적 행보는 미국의 변화를 유도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유럽연합의 적극적인 개입은 유럽연합이 대북한 인권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은 한국과 미국에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유럽연합의 전반적인 북한 인권개선에 필요한 조치는 한국과의 지속적인 공조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남북한 분단대결상황에서 한국이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하여 실질적인 인권개선을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오히려 당면한 평화협상, 핵문제 등 핵심사안을 중심으로 볼 때 북한인권문제를 직접 거론하는 경우 그나마 기존 대화채널을 경색시키거나 차단시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북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인권사안별로 별개의 전략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의 사례에서 헬싱키 협정의 제3부 교류협력 파트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입지조건에서 볼 때 한국이 담당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다. 동시에 동독과 서독의 사례에서 확인하다시피 국제사회와의 연대와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북한에 대해 인권문제보다 인적 교류확대와 대화유지 전략을 추진하고, 유럽연합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북한 인권개선을 요구하는 역할 분담이 바람직하다. 즉 남한과 북한 사이에 더 많은 대화와 교류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자유로운 남한 및 서방정보가 북한사회에 들어가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