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칼럼

다시 생각해 보는 북한인권 문제(오준칼럼)

관리자
2021-04-06
조회수 99

다시 생각해 보는 북한인권 문제

 

오준 경희대 석좌교수 (전 유엔대사)

 

북한의 인권문제는 2003년 처음 유엔 의제로 상정되었다. 유엔 인권이사회와 총회의 정규 의제가 되었을 뿐 아니라 2014년부터는 안보리에서도 다루어지게 되었다. 국제사회에서 인권문제가 이렇게 집중적으로 다루어지는 국가는 전 세계에 10개국이 안 된다. 

북한인권 문제가 다른 어떤 국제적 이슈보다 한국인에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북한 주민들이 현 시점에 실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한 핵 문제는 중요한 안보 문제이지만, 그로 인해 누군가가 당장 고통을 받고 있지는 않다고 할 수도 있다. 북한에서 인권 탄압으로 고문당하고 처형되는 사람들은, 필자가 2014년 안보리 연설에서 이야기한 대로 우리에겐 남이 아니다. 그냥 통계 속에 나오는 아무나가 아니다. 누군가에겐 북에 두고 온 형제자매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아직 만난 적이 없는 사촌일 수도 있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에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현대 인권 개념의 대원칙이 선포된 후, 민주주의와 인권은 전 세계에서 확산되어 왔다. 오랜 협상 끝에 1966년 합의된 국제인권규약은 인권을 자유권(시민적.정치적 권리)과 사회권(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으로 나눈 2개의 규약으로 채택되었다. 신체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와 같은 자유권은 독재가 종식되고 민주주의가 실현되면 보장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이나 복지를 받을 권리와 같은 사회권은 국가가 보장해 줄 능력이 있어야 한다. 현재 북한의 인권 상황은 양쪽 모두 문제가 있다. 북한이 개방되어서 경제발전을 이루고 민주화가 실현된다면 인권의 두 분야에서 모두 큰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가까운 장래에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북한 주민들의 인권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장기적으로는 북한인권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과 문제의식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의 국제사회에서 인권탄압 국가에 인권 향상을 강제할 수 있는 직접적 수단은 없지만, 국제적 압박, 소위 ‘거론해서 망신주기(naming and shaming)’는 여전히 유효한 수단이다. 어떤 국가도 인권 침해에 대한 지속적인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해 무감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민주화의 길에 들어설 때까지 국제 인권 메커니즘을 통한 일관된 문제 제기와 압박이 필요하다.

 

이 같은 국제적 압박은 가급적 비정치적이고 전문적 접근방식을 취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인권에 있어서 완벽한 국가는 없다. 유엔 인권이사회의 ‘보편적 인권검토(UPR)’를 통해 모든 회원국은 약 4년마다 동료심사를 받는다. 북한 뿐 아니라 미국이나 우리나라도 수백 개의 권고사항을 받아 왔다. 물론 우리나 미국이 사형제도, 경찰의 과잉 대응 등에 관한 권고를 받은 것과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공개처형 등에 관한 지적은 그 심각성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북한의 인권상황을 지적할 때, 인권에 완벽한 국가는 없으며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도와줘서 인권을 개선해야 한다는 비정치적, 제도적 접근방식을 취하는 것이 북한의 반발을 줄이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이 북한 인권과 관련한 국제적 압박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필요성에 비춰 볼 때, 2019년부터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안에서 공동제안국 참여를 중지한 것은 잘못된 정책 변화라고 본다. 이와 관련한 국제 인권단체들의 비판에 대하여 우리 정부는 “현재의 한반도 정세 등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접근방식은 한국의 인권 문제에 관한 원칙을 약화시켜서 국제적으로나 대북 관계에 있어서나 입지를 좁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향후 인권 결의안의 대상이 되는 다른 국가들이 우리의 입장 변화를 요구할 때, 인권문제에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우기도 어려워질 수 있다.

단기적으로 북한인권 상황의 개선을 위해서는, 대북 인도적 지원 등을 통해 사회권의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국민의 사회권은 정부의 독재와 정치적 탄압만이 아니고, 경험이나 재원이 부족해서 실현되지 못하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국제사회의 포괄적인 대북제재 유지가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의 대북 지원은 인도적 분야에 국한되어야 한다. 인도적 지원은 기본적으로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장애인 인권 분야의 지원이 있다. 사실 북한은 지난 10년간 장애인권리협약 가입, 최초의 패럴림픽 참가 등 장애인 인권 분야에서 진전을 보이고 있다. 장애인의 권리와 복지를 개선하려면 다른 나라의 예에서 배울 필요가 있고, 필요한 재원이나 기술도 지원받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나 민간단체들이 북한 장애인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대북제재 하에서도 가능한 일이고 인권상황 개선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다.

 

북한 인권문제를 생각하고 있는 오늘의 시점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기가 될 수 있다. 1990년대 초 세계적으로 냉전이 끝나고 남북한 간에도 데탕트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북한 핵문제가 시작되었다. 당초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기로 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30년간 계속된 북핵문제는 북한 자신의 발전은 물론이고 남북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 수년간 핵.마사일의 완성 과정에서 국제사회와의 극단적 대립을 경험한 북한 정권이 이제는 생존과 발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보다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기를 바란다. 북한 주민들이 필요한 것이 핵무기가 아니고 경제적 풍요와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자유라는 점을 깨닫고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남북대화와 북미협상을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이 올바른 선택을 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누리고 살 수 있게 되면, 북한인권 문제도 유엔 의제에서 자동적으로 삭제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북한인권 문제를 제대로 다루는 것이 모두에게 중요하다.